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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제산책
제64호 2013년 8월 27일
2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꽃들이 서로 어우러져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외도는 40여 년 전 만해도 누구도 찾지 않는
외로운 섬이었다.
외도는 개인 소유의 섬이다. 이창호·최호숙 씨 부부 소유다.(2003년 이창호 씨는 작고했다)
이들 부부가 처음으로 외도를 찾은 것은 1969년이다. 이 근처로 낚시를 왔다가 태풍을 만나 우연히 이 섬에서 하룻밤 민박을 한 것이
이들 부부와 외도의 첫 만남이었다. 당시 섬에는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았다. 외도 우물가를 중심으로 7~8가구가 모여 살았다. 고구마를
심거나 돌미역을 따거나 고기를 잡아 생활했다.
선착장이 없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섬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다. 이 곳 사람들은 육지로 나가는 것이 소원이었다. 외도의 아름다움과 자연에 반한 그들은
1973년 마을 사람들로부터 거액을 들여 외도를 샀다. 마을 사람들은 집과 땅을 팔고 육지로 나갔다.
그때부터 이 섬을 개발하기 시작했다. 밀감나무를 심었다가 한해 겨울 한파로 물거품이 됐고, 돼지도 키워봤지만 돼지 파동으로 실패를 하고 말았다. 실패를 겪은
이들이 생각해 낸 것은 바로 식물원. 1976년 12월 관광농원조성을 시작해 1995년 개원하기까지 20년을 서울에서 거제까지 나무를 옮겨와 심는 작업을 했다. 당시 교
통편이야 두 말할 것도 없이 어려웠다. 서울에서 마산, 마산에서 또 버스를 타고 고성, 통영을 거쳐 장승포, 장승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구조라, 구조라에서 다시 외
도로 가는 배를 이용해야 했다. 꼬박 하루가 걸렸다.
직접 나무를 심고, 계단을 만들며 섬을 조금씩 바꿔 나갔다. 마침내 1995년 4월 15일 ‘외도 해상농원’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. 그 후로도 계속 꽃과 나무를 심으며
변화를 거듭, 외도 해상농원을 ‘외도 보타니아’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도약을 계속하고 있다. 외도 보타니아는 거제의 관광지가
아니다. 2007년 8월 3일 1,000만 명 관광객 시대를 맞으며,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됐다.
지금 외도 보타니아에는 100년 만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‘용설란’이 피어 있다. 외도에 심겨져 있는 용설란은 모두
100그루에 이르지만 지난해까지 고작 네 번밖에 꽃을 피우지 못했다. 그러나 올해는 세 그루에서 동시에 꽃을 피워
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큰 기대를 하고 있다. 어떤 소원을 빌어도 그 소원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.
이밖에 최호숙 회장이 직접 구상했다는 비너스 가든과 겨울연가의 마지막 회 촬영지로 유명한 리스 하우스,
제1전망대와 파노라마 휴게실에서는 맑은 날 대마도가 보일만큼 비경을 자랑한다. 옛날 마을 주민들이 밭을 일
구던 곳에 꾸며 놓은 천국의 계단은 마치 천국에 온 듯 착각을 불러온다. 한 번쯤은 다 가봤을 외도지만 외도의
역사를 알고 느끼는 외도의 풍광은 우리에게 어떤 감동을 줄까?
직접 가서 느껴보자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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